위암외과 전문의로 외길 인생
- 등록일 : 2012-02-28 00:00
주요약력
“위암외과 전문의”로서의 인연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권 성준 교수는 1980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동 대학병원에서 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1985년 외과 전문의 자격을 받은 뒤 군의관 복무를 마친 1988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실에서 전임강사로 교편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99년부터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조교수이던 1991년엔 일본 동경 국립암센타에서 위암외과의 세계적인 권위자 마루야마 선생의 의국에서 1년간 연수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평생“위암외과 전문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 국립 암센타 연수 기간 중에 이룬 인연
1991년 5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되는 부동의 1위 암인 위암을 외과의사로서의 평생 연구주제로 결심하게 된 동기는 가장 많은 암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위암만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외과 전문의는 서울대학교병원 외과의 김진복 교수님 한 분 뿐이셨다. 그토록 많은 위암 환자의 수술은 수 많은 외과교수들이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그야말로 아무나 수술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외과의사가 약 70~80%이고 내과/병리과/방사선과 의사들이 약 20~30%를 이루고 있었는데 학회 참여 인원이 자그마치 1,500명 정도였다. 그 당시 대한외과학회를 가 봐도 1,000명을 훨씬 밑도는 인원이 참석하고 있었고 그나마 학회 후반부의 학회장엔 정말 소수의 골수 회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이 위암이라는 단일 질환을 주제로 한 일본외과학회의 자 학회에 마지막까지 빽빽이 자리를 채우고 열띤 토의를 하였다. 연수 시절 나는 동경의 한 아파트에 혼자 머물고 있었고 이것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 국립 암센타로 위암외과를 배우러 오는 모든 교수들을 나의 아파트로 초대하여 같이 자고 밥도 같이 해 먹었으며, 우리나라 위암외과의 위상을 일본처럼 높여가기 위해서 귀국하면 우리 모두가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의 위암외과를 좀 더 전문화된 영역으로 높여 가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다행히 당시 만났던 한국 교수들은 모두 출신대학은 달랐으나 연배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위암외과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1992년 5월 말 일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여 약속하였던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한 끝에 1992년 6월 20일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의국에서“대한위암연구 동우회”라는 연구회를 결성하게 된다.
학술 활동
1992년 5월에 일본에서의 1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부터 나는 위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공동연구의 중요성을 주창하였고 이런 연구모임을 주관하고 있었다. 1993년엔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김진복 교수님이 창립하신“대한 위암연구회”의 서울지역 대표자로서 활동하였고 2000년에 창립한“대한위암학회”에서는 초대 편집위원장을 7년간 역임하며 학회지 발행을 주관하였으며 지금은 학회 감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그 동안 대한위암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으로“로슈종양학술상”을 2회(2002년, 2006년) 수상하였고, 최다논문게재상을 3회(2006년, 2007년, 2010년) 수상 하였다. 사노피-아벤티스 학술상을 2007년, 2010년에 수상하였고 2010년엔 대한암학회에서 로슈암학 술상을 수상하였다.
<한양대병원 김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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